엄청난 부작용에 겁먹은 채로 스타틴 복용을 시작했고 3개월이 다되어갔다. 그 사이에 큰 부작용은 없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수치의 변화, 즉 LDL 수치나 비중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깜깜이인 상황이었다. 그러다 3개월이 되던 때 즈음에 드디어 병원으로부터 첫 추적 검사를 해보자는 권유가 있었기에 예약을 하고 검사를 받아봤다.
참고로 이 글은 정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 로그에 가깝다는 점에 주의하자.
검사는 묘사할 게 그다지 없는 게 일반적인 공단 건강검진의 모습을 상상하면 되는 것 같다. 간단히 전날 저녁을 먹은 후 물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음날 아침 주린 배를 움켜 잡고 혈액검사하고 소변검사를 했다. 혈액을 통해 콜라스테롤, 중성지방, 당뇨, 간수치 등 각종 중요 지표를 확인하고 소변검사를 통해 단백뇨 등의 부작용을 관찰하기 위함이다.
결과는 대략 일주일이면 나오는 듯했다. 개인적으로는 병원에 다시 가는 게 좀 부담스러워서 - 사실 눈앞에서 결과를 듣는 게 무서워서 - 그냥 전화로 알려달라고 하고 병원을 나섰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치가 안 좋으니 약을 더 강한 걸로 바꾸죠"와 같이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때는 머리가 대머리처럼 빛나는 의사가 "와 이제 약 안 먹어도 되겠어요" 아니면 "결과가 너무 좋으니 맛있는 거 좀 먹어도 봐드림 ㅎ" 같은 식의 희망이 가득 찬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참고로 주치의는 대머리는 아마(?) 아니었을 거다. 설마 가발은 아니겠지....
많은 상상이 오갔지만 역시 진짜베기가 중요한 법이다. 대략 일주일 후 이상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스팸이나 피싱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전화가 올 수도 있으니 용감(?)하게 받아봤다.
전화: "내과인데요, 검사 결과 전화로 알려달라고 하셨죠? 원장님 바꿔드릴게요"
전화를 받아서 정말 다행이다. 결국 결과를 알게 되는 날이 왔다. 과연 어떨까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살짝 두근거림이 지나갔다.
의사: "아 네 뭐 혈액검사 결과는 뭐 이러쿵저러쿵해서 괜찮게 나왔는데요.... 음.... 소변검사는 음 뭐..."
음? 뭐? 뭐지 저 말줄임표는?
의사: "문제는..."
...???
의사: "없네요"
...
이 의사양반 밀당 잘한다. 참고로 각색은 거의 없는 팩트라는 점을 밝힌다.
의사: "약을 바꿀 필요는 없겠네요. 약 꾸준히 잘 드시고 이대로 잘 유지해 봅시다."
결론은 이거다. 약 먹는 동안에는 수치는 그럭저럭 위험한 수준까지는 안 나올 것 같다. 그러니 '지금 하던 대로 꾸준히 하면 좀 더 오래 살 거임' 이런 의미다.
전화를 끊고 약간은 허탈해진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가족들에게 알려줬다.
그날 밤 약간의 일탈을 한다. 그동안 금기시했던 라면으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초코크림빵을 하나 사 먹었다. 다음날 저녁으로는 햄버거를 사 먹었다. 설마 일탈이 아닌 수준일까?
물론 이런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을 한두 번 먹는다고 바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 식단에 포화지방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위험도를 더 늘리진 않을 거다. 하지만 일탈은 일탈이다. 그리고 이런 일탈은 정말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소소한 행복임에도 굉장히 큰 행복감이다.
물론 약간은 반성도 하고 있다. 일탈이 이어지면 다시 원래의 식습관으로 돌아가 버릴 수 있으니 긴장의 끈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라면과 초코크림빵과 햄버거는 여전히 맛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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