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은 배우자와의 인연이 깊은 지역이다. 다르게 말해서 데이트할 때 순대볶음을 자주 먹을 기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신림 순대볶음의 유명세는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인데 빌딩 두 채 이상이 모두 순대볶음을 위해 모여있을 정도니 말이다. 참고로 배우자는 백순대볶음 파다.
이번에는 갑작스러운 배우자의 입맛 퀘스트가 발생했다. 주기적으로 순대볶음 섭취 퀘스트가 등장하긴 하지만 아예 신림에 가자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우선순위가 보통이 아닌 퀘스트였다. 이 정도면 안 갈 수가 없다. 물론 굳이 안 갈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차를 몰고 갔지만 역시 이 동네는 주차가 참으로 지x이다. 결국 공영주차장 자리를 못 찾다 주변 모텔에서 주차장을 나름 저렴하게 오픈하길래 거기다 댔다. 그리고 순대타운으로 돌진했다.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배분을 잘할지가 인생을 많이 좌우할 것 같긴 한데 이 선택은 지금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긴 한다.
순대타운으로 가면서 배우자가 뭔가를 찾아보고 있다. 이번에서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집을 찾을 예정이란다. 오오 드디어 뭔가 새로운 순대볶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순대타운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고 나서 쏟아지는 호객행위에 피폐해진 탓일까? 아니면 멀리 가기 싫어서일까? 그냥 서비스 많이 준다는 입구에 가까운 한 집으로 갑자기 이끌려 들어갔다. 배우자가 안 그래도 순대볶음 매료의 저주에 걸린 상황에서 배가 많이 고팠던 듯하다. 참고로 광고글은 아니기 때문에 어디인지 밝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착석한 뒤 늘 그랬다시피 백순대볶음 2인분을 주문했다.
잠시 후 겪어보지 못한 서비스가 등장했다. 애피타이저로 돼지 간이 나온 것이다. 따뜻하게 데워져서 그것도 소스와 함께 말이다.
물론 소스는 원래 백순대볶음에 나오는 소스인데 그냥 좀 빨리 나온 것뿐이긴 했지만 간을 찍어 먹기에도 좋은 소스였다.
간을 그다지 즐겨 먹지 않는 배우자도 이번에는 쉽사리 손이 간 모양이다. 사진 찍을 찬스를 아주 제대로 만들어 주셨다. 그냥 사진보단 이런 게 더 동적이고 뭔가 맛있어 보이지 않을까? 아닌가? 아님 말고다.
따뜻한 간은 맛있었다. 배고픔이라는 디버프 덕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참 좋았다.
간과 같이 나온 소스는 이후 순대볶음의 가운데 자리로 옮겨가실 예정이다.
곧이어 백순대볶음을 가득 담은 철판이 멋지게 버너 위로 착륙했다. 그리고 여기에 소스 그릇이 화려하게 날아와 합체했다.
언제나 그랬다시피 순대볶음 철판 한가운데는 역시나 소스님의 차지다.
이제 중요한 맛과 식감 평가를 해보자.
결론: 뭐 그저 그랬다.
안 좋은 결론 같이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이 표현의 그 어디에도 맛없었고 다시는 안 가느니 뭐니 이런 이야기는 전혀 없다. 순대타운 안에서 순대볶음은 특별히 다른 맛을 기대하는 게 문제일 지도 모를 정도로 상향평준화 되어있는 시장이다. 기본적으로 맛은 보장되어 있다는 말이다.
우선 소스부터 평가해 보자. 맛 자체는 평범했다. 다만 다른 곳보단 소스가 약간 매콤했던 듯하다. 다만 주문하기 전에 얼마나 매운 걸 좋아하는지 물어봤기에 맵기는 기호에 맞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백순대볶음의 맛 평가도 '그저 그런 백순대볶음이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언급했지만 상향평준화 된 시장이다. 꽤 오랜 기간 순대타운에서 여러 집을 방문해 봤지만 맛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렇기에 순대타운 안에서 그냥 한산한 가게 앞을 지나다 서비스 많이 준다면 들어가도 아마 잘못된 식당 선정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 집만의 특색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백순대볶음에 간과 버섯이 좀 들어가 있었다. 뭐 그 정도의 차이라도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그런 차이에도 맛은 신기하게도 그저 그랬다. 평범했다. 아니 똑같았다. 버섯이나 간 씹을 때 식감과 맛이 조금 달랐을 뿐이지 나머지는 식당을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모든 가게를 다 가 본 것은 아니지만 순대타운에서 가본 모든 순대볶음 식당에서는 서비스로 사이다가 나왔다. 물론 사이다를 주는 가게는 좋은 가게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작자가 알레르기로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뭔가 기울어진 평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긴 어차피 개인 블로그고 전체가 기울어져 있으니 여기의 모든 기록은 기울어져 보일 수밖에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결론은 이미 적었지만 다시 강조해 보자. 순대타운 안에서 큰 특징을 찾으려 노력하지 말자. 맛은 거의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식당이 더럽거나 주인이 불친절한 경우만 잘 걸러내고 적당히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도 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순대타운 안에서 호객 행위를 좀 안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너무 잡아 끄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쁠 때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배우자는 그런 걸 즐기는 타입 같기도 해서 억지로 주장할 수준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이 글이 그저 평범한 식사 기록 카레고기...카테고리의 한 글로 끝나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종의 사태(?)로 이 글에는 '데이트'라는 요소가 추가되어 버렸다. 하필 (기쁘게도) 순대타운 1층에 카페가 있었을까.
카페 입구 포스터의 뭔가가 배우자를 상당히 매료시킨 모양이다. 원래는 해당 메뉴와 음료 정도만 적당히 포장해서 바로 갈 계획으로 그 카페에 들어갔다. 그 메뉴는 카페 시그니처 메뉴로 생각되는 '멜팅 티라미수'로 이름처럼 뭔가 녹아내리는 듯한 비주얼의 티라미수이었다. 아무래도 시각적 호기심이 생기긴 하더라. 덕분에 카운터에서 멜팅 티라미수와 각자의 음료로 카페라떼와 바닐라라떼(라고 쓴 아포가토)를 포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여기서 약간 꼬여버렸다. 멜팅 티라미수가 포장이 안 된다니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카페에서 처먹기로 했다. 처먹는다는 건 비속어 같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아주 맛있게 먹는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고 억지 주장해 본다. 뭐 하여간 이런 건 간만의 데이트 같아서 나쁘지만은 않았다.
다만 멜팅 티라미수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결론을 전달해야 할 것 같다. 비닐 커버를 벗겨내면 상단에 올려진 크림이 쏟아지면서 마치 녹아내린(melt) 모습이 연출되는 게 메뉴의 콘셉트인데, 실제로 경험해 본 모습은 너무나 그로테스크(?)했다. 위 사진에서 더 이상 진행된 사진이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도무지 맛있어 보이는 사진이 안 나왔다. 광고 포스터에는 참 맛있게 생겼었는데... 설마 이 글을 쓰는 작자의 손이 저주를 받은 것일까?
맛에서도 안타까운 결론을 전달해야 할 것 같다. 정리하자면 '촬영용 맛'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확 맛있는 그런 건 아니었다. 사진 잘 찍고 적당히 커피 간식이 되었으면 뭐 만족할 순 있겠지. 아니 잠깐 촬영의 절반은 실패했으니 촬영용 맛에서도 실패했다는 것일까?
어쨌거나 카페라떼는 평범했다. 나머지 바닐라라떼는 그냥 아포가토라서 커피의 쓴 맛을 선호하지 않는 배우자님의 간택을 받지 못하고 대부분 버려지게 되었다.
사실 배우자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제대로 된 티라미수를 맛본 이후로 한국에서 티라미수에 만족하는 꼴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러니 위 결론에 대해서 실망(?)하는 이는 없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논란(?)의 순대볶음 데이트...는 여기서 마무리한다. 고지혈증 환자라는 놈이 뭐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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