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으로서 술자리에서 듣게 되는 말 중 가장 기분 나쁜 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술 마시다 보면 나을 거야"라는 말이다. 과연 이게 그 말이 가져올 파급을 알고서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농담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일단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인 것은 분명하다. 술을 마시면 겨우 기침을 계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던 작던 급성으로 호흡기 부종을 유발하는 무시무시한 증상을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할 주제는 아닐 것이다.
알레르기는 그만큼 위험한 증상이다. 이는 의사들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알레르기는 치료나 면역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가시지 않는 것은 어쩌면 뭔가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기사를 보게 되었다.
영국 킹스 칼리지 면역학 교수인 스티븐 틸 박사 연구팀은 실제로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을 꾸준히 섭취하면 해당 음식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심한 알레르기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실험을 진행해 봤다. (...중략...) 실험은 전문가 감독 아래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성인 참가자들이 땅콩 섭취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성인의 3분의 2가 매일 땅콩을 섭취하는 방법을 통해 알레르기 반응이 감소했다. - 출처
어떤 면에선 희망적인 내용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기사를 어디까지를 믿어야 하는 걸까?
알레르기는 훈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의외로 이 연구 이전에도 이미 이와 관련된 치료법이 정립되어 있다. 이름하여 '알레르기 면역치료' 혹은 '탈감작요법' 등 몇 가지 분류가 있는 것 같다.
- 알레르기 면역치료(Allergen Immunotherapy): 원인 알레르겐을 점차적으로 투여하여 면역 체계를 조절하는 방법
- 탈감작요법(Desensitization): 과민반응 없이 치료 용량에 도달하기 위해 극소량에서부터 약물의 농도를 점진적으로 증가시켜 약물에 대한 일시적인 내약성을 유도하는 과정
각 치료법의 차이가 어떻든 핵심적으로 알레르기 원인 물질(알레르겐)의 접촉을 극소량에서부터 점차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으로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방법이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그리고 인용된 기사의 연구에서도 동일한 것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땅콩을 아주 적은 양부터 점차 양을 늘려가며 먹는 방식으로 알레르기 호전을 측정하는 방식이니 말이다.
다만 인용한 기사의 연구는 그 객관성을 증명하기에는 규모가 좀 부족하다는 점이 있다. 단지 21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고 여기서 14명이 눈에 뜨이게 호전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100%도 아닌 데다가 겨우 21명의 샘플이라는 것은 연구로써 부족한 면이 매우 많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알레르기 면역치료와는 같은 것을 증명한다는 면에서는 무시할 수는 없을 거다.
그렇다면 이제 알레르기를 안 무서워해도 된다는 말인가?
이런 연구나 치료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전문 의료 인력의 보조 하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치료든 연구든 의사가 항상 옆에서 대기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거나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개인이 혼자서 이런 치료나 훈련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특히 호흡기나 순환기계의 극단적인 급성 알레르기 반응(아나필락시스)은 치명적이다. 말 그대로 술이나 땅콩 잘못 먹었다가 즉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극소량이라 한들 그 반응이 얼마나 세게 나타날지를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가 없다. 왜 의사를 대동해서 연구나 치료를 하는 걸까도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의사가 아니라면 '알레르기 면역 치료'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
아무 생각 없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심장을 철렁이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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