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학교에서 역사책으로나 봤을 법한 단어다. 내 생애에 이 단어가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제기한 계엄 준비설도 그저 루머 수준으로 넘어갔으니 말이다.
어제 하루 잘 끝난 국장이었건만 EWY(미장의 한국 지수 선물 ETF)가 갑자기 곤두박질치고 환율이 폭등하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수상했다. SNS에서 원인을 찾아보려 하자마자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동했다는 글이 바로 눈에 바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언론사 이름을 달고 또 가짜 이미지가 도는 걸까? 하지만 곧이어 모든 언론에서 해당 소식이 다뤄짐을 알게 되고 그 가짜뉴스 같던 소식이 진짜임을 알게 되었다.
순간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당황했다. 뇌가 정지한 듯한 느낌이라고 밖에 설명을 못 하겠다. 하려고 했던 일은 이미 잊혔다.
곧이어 정신이 약간씩 동작하는 듯하더니 뒤이어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거에 있었던 계엄은 어떤 것이었나. 역사책에서 아주 잘 배웠던 내용이다. 계염령은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모든 것을 강압하는 일이다. 그런데 당시는 말 그대로 국민을 국민으로 보지 않기 시작했던 일이었다. 대통령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군대와 경찰로 제거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계엄도 그때와 비슷한 것일까? 정말 군대를 동원할까? 내전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과연 나와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인터넷은 계속 연결될까? 내 은행 계좌는 어떻게 될까? 내 주식 계좌는 어떻게 될까?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는 없었고 그저 걱정에 휩싸여 유튜브와 SNS를 통해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내가 약간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얼마 후 군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SNS로 접할 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공영방송 라이브에 군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들이 국회로 강제 진입하는 긴박한 모습이 보이자, 그리고 헬기 소리까지 여기저기 크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걱정이 최고조로 폭등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계엄이라도 국회를 이렇게 무력으로 통제해도 되는 것일까? 분명 국회에서는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러면 뭔가 말이 안 되잖아?
일부 아마추어(?) 정치인들이 국회를 봉쇄 중인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프로(?)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국회에 모여들었나 보다. 과반을 넘어 190명의 의원들이 국회에 모였다는 소식이 들려 이제 계엄 해제가 의결될 것인가 기대가 약간 생겼다. 하지만 군인들이 국회에 들어오는데 국회는 안건 상정이 되지 않고 시간만 흘러가자 긴장감도 최고조가 되었다. 정말 조마조마했다. 이후 실제로 의결이 이뤄지고 만장일치 발표가 나기 전까지 심장이 너무 열심히 일을 했다.
드디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잠을 자야 할 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공식적인 대통령의 발표가 없는 한 끝난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아도 잠이 들지 않았다. 수시로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마무리가 되었나 확인을 했다. 계속 사태는 이어지고 있었고 두근거리는 가슴은 잠에 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고 계엄 해제 발표가 이뤄졌을 시점을 얼마 안 남기고 일단은 무사히 잠에 들게 되었다.
...
아침, 다행히도 일상이 보이고 있었다.
물론 모든 일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당장의 계엄은 끝이 났지만 다시 계엄이 있을 수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정치적 불안정은 한동안 이어질 거다. 당장 사회는 돌아가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 일로 많은 것을 느꼈다. 특히 대통령 한 사람의 권한이 이렇게 막강하고 크고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 한 사람의 결정이 나라를 어떻게 마비시키고 망가뜨리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잠시나마 의원내각제의 장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직 결론이 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일이 긍정적으로 끝나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능력(?)은 한층 더 높아질 것 같다. 뭐 좋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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