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사유로 최근 Apple ID의 국가 변경을 마쳤다. 무난하게 잘 되었을 리는 없고 그 사이에 꽤나 큰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경험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쓴다.
프롤로그
내 Apple ID는 굉장히 오래되었다. 사실상 한국 iPhone의 역사와 견줄 수준이다. KT가 iPhone 3GS를 한국에 들여왔을 때 사전예약으로 구매하고 만들었던 계정이니 틀린 말은 거의 없다.
내 첫 애플 계정의 특징이 있다면 미국 계정이라는 점이다. iPhone 3GS 출시 당시 한국 앱스토어에서는 앱이 별로 없어서 미국 계정이 필수였던 때다. 다행히도 카드 등록 없이 미국 계정을 생성하는 방법이 있었기에 미국에 살지 않고도 미국 계정을 만들 수 있었다. 다만 미국 지역의 청구 주소를 입력해야 하는데 당시 애플 사무실 주소를 넣어서 가입했던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그땐 다들 그렇게 아무 주소나 넣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iTunes 기프트카드 선불 충전 방식으로 미국 계정을 당분간 이용했었다. 그땐 앱 쇼핑이 참 즐거운 때였다.
시간이 제법 흐르고 한국 앱스토어도 충분히 성숙되어서 어느덧 미국 계정이 필수적이지 않아진 시기가 결국 욌었다. 그래서 앱스토어용 한국 계정을 파고 신용카드를 등록해 구매에 사용했다. 충전이 필요 없으니 신세계였다.
다만 iCloud 만큼은 많은 정보가 묶여있기에 기존의 미국 계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최근에 이르렀다.
문제의 시작
과거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내 가족이 생겼다는 점이다. 아내와 어린아이가 있고 곧 둘째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첫째의 경우 이제 스마트폰의 존재를 알게 되고 슬금슬금 의존성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자녀 컨트롤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는 말이다.
자녀 컨트롤을 위해선 여러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은 가족 공유를 켜야 한다. iPhone의 설정에서 Apple ID로 들어가면 가족 공유 항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그다음은 자녀의 계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자녀 계정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 본인이 성인임을 증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신용카드 인증이다. 그런데 내 경우 신용카드 인증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미국 지역의 계정이고 미국 청구 주소가 입력된 상태에서 한국 신용카드로 인증하려니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가볍게 "이 계정의 국가를 한국으로 바꾸면 되겠지?"라고 생각해서 계정 설정에 들어가 보니 마침 국가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류가 뜨면서 국가 변경을 할 수가 없었다. 애플 지원 문서에 의하면 계정에 선불 충전 잔액이 남아있으면 국가 변경을 할 수 없다는 항목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 계정을 쓰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iMessage와 iCloud 계정을 포기하기엔 너무 문제가 많았다. 심지어 해당 계정으로 현대카드를 Apple Pay에 등록해 둔 상태인 데다, 한국 계정 메일 주소는 메일 계정 이름 뒤에 '+'와 함께 한국 국가코드를 붙여 만든 굉장히 안 이쁜 주소였기에 대표 계정 주소로 사용하고 싶지가 않았다.
어쨌든 문제의 시작은 바로 이 국가 변경 실패에서 시작했다.
애플 지원을 통한 해결 시도
잔액과 관련한 문제는 구글링을 통해 보니 여러 선생님(?)들이 계셨다. 해법은 단순했다. 애플 지원에 연락해서 잔액을 없애달라고 요청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개인적인 사유로 애플 지원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전화와 채팅 두 가지 통로가 있었는데 전화는 거부감이 심해서 채팅으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채팅창이 열리고 약간 상세하게 현재의 상황 및 문제를 알렸다. 그리고 잔액을 없앨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지원 담당자의 채팅 문구는 약간 딱딱하지만 친철해 보이게 하는 문구를 쓰는데 그냥 애플의 정책인 듯하다. 어쨌든 담당자는 내가 원하는 작업에 새로운 걸림돌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잔액 소진을 위해서는 잔액이 1달러가 넘으면 안 된다고 한다. 즉 잔액을 1달러 미만으로 낮출 수 있게 앱스토어나 iTunes 등에서 아무거나 싼 거라도 구입해 달라 요청을 받았다.
새로운 문제의 등장
담당자의 요청대로 잔액 2달러를 대충 소진하기 위해 아무거나 구매해 보려 했다. 우선 iTunes 음악 스토어에서 1달러대의 음악 구입을 시도했다.
구입이 잘 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불행히도 청구 주소 확인이 필요하다는 오류가 떴다. 그렇다면 청구 주소를 갱신해 주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한국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했는데 오류가 뜬다. 상세한 오류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지원에 문의하세요
라는 식의 오류가 떴다.
아마도 미국 국적 계정이라 주소지가 미국으로 되어 있는데 한국 신용카드를 입력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새로운 문제의 등장
그렇다면 청구 주소를 한국으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유감스럽게도 청구 주소를 한국으로 바꿀 수가 없었다. 일부 주소 필드가 텍스트 입력이 아닌 드롭다운 방식으로 선택하도록 되어있었다. 당연하게도 미국의 주(state)를 선택하는 필드다. 한국의 주소를 입력할 수가 없다.
애플의 지원 담당자와 계속 채팅 중인 상태였기에 이 문제에 대해 물어봤는데 당황한 티가 느껴졌다. 아마도 이런 문의를 받은 경험이나 교육이 없어 보였다.
어쨌든 담당자는 주소지가 없는 주소여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애플의 옛날 본사 주소인데 없어졌으려나? 하여간 이 주소 대신 구글링 해서 최근에 쓰인다는 주소로 교체해 봤다.
그래도 안 된다.
신용카드 문제인가 싶어서 다른 신용카드를 대입해 봤지만 다 동일한 결과였다. BC든 VISA든 Master Card든 AMEX든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문제의 정리
자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문제를 종합해서 하나로 정리해 보자. 대충 이렇다.
계정의 국가 바꾸기 -> 잔액 소진 필요 -> 청구 확인 필요 -> 계정의 국가를 바꿔야 함 -> 처음으로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른바 무한루프다. 프로그래밍에서만 무한루프가 있을 줄 알았더니 실생활에서 무한루프를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선임 담당자와의 통화
이제 해당 지원 담당자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결론이 나게 되었다. 결국 담당자는 자신의 선임을 연결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한다.
다만 문제는 전화로만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전화통화는 좀 싫어하는 편이라 거부감이 들었다. 거기다 과거에 개발자 관련 지원에서 한국어가 네이티브가 아닌 애플 담당자와 통화했던 곤혹스러운 경험이 더더욱 거부감을 들게 하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채팅지원이 종료되고 거의 바로 전화가 왔다. 기계음성으로 전화를 받을 수 있으면 1번을 누르고 그다음에 녹음을 원하는지 등의 동의를 구했다. 이후 선임 담당자와의 통화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일반적인 한국인의 한국어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iPhone의 화면 공유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Apple ID를 알려준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별도로 할 일은 그다지 없었다. 연결이 되고 문제를 시연해 줬다.
불행히도 선임 담당자도 좀 당황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이런 상황을 겪어보거나 교육받은 적은 없는게 확실했다.
선임 담당자도 당장의 해결 방법은 모르겠고 그저 원인의 추측 만을 이야기해 줬다. 미국 계정으로 한국의 현대카드를 애플페이에 등록했다가 문제가 생긴 경우가 아닐까, 혹은 이전에 미국 계정에 입력한 주소지가 이상해서 불건전(?) 계정으로 불허용 상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등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문제 해결을 위해 도와줄 의지는 보여줬다는 점이다. 선임 담당자는 다른 부서와 협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희망적이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려서 최대 5 영업일 즉 다음 주는 되어야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동의한 후 통화를 끝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희망은 가질 수 있었다.
느리고도 빨랐던(?) 문제의 해결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바로 다음날 해당 선임 담당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잔액이 1달러가 넘지만 이를 강제로 소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왔다. 물론 환불은 안 되기 때문에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연히 동의했다. 어차피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던 돈이었다.
그런데 이걸 처리하는데 또 5일에서 7 영업일 가량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하... 답답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상당히 느긋하게 지내려고 했는데 또 놀랍게도 그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다. 잔액 소진이 완료되었으니 국가 변경을 해 보라는 식으로 말이다. 아니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했을까. 솔직히 잔액 날리는 게 기술적으로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내심 기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아무 문제 없이 계정의 국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무리
이후 청구 주소를 한국의 것으로 바꾸고 한국 신용카드도 새롭게 추가했다. 아무 문제 없이 동작하는 지저분하지 않은 메일 주소의 애플 한국 계정을 얻게 되었다.
이제 가족 구성을 시작해 봐야겠다. 참 심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힘들었던 나날이었다.
여담으로 한국 계정에서도 신용카드로 성인인증은 여전히 실패한다 [...]
성인인증 실패 문제와 관련해서 검색해보니 대부분 실패했다는 경험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대신 카카오페이 등 다른 결제 수단을 이용해 보라고 하는 조언을 봤다. 개인적으로도 카카오페이로 인증에 성공했다. 혹시 모르니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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